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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스타는 화려하게 시든 꽃 같다

오청월 2020. 6. 26. 19:22

 

스타가 가장 완벽하게 빛나는 순간은 나를 너에게 완벽하게 맞추었을 때다 내가 오전히 ‘너(대중)의 욕망 그 자체’일 때,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않을 때, ‘나’가 사라졌을 때다 
‘나’를 주장하는 모습이 가능할 때도 있다 만 원 안에서 물쓰듯 써도 좋다는 호의처럼 ‘너’가 ‘저기 주장하는 나’를 근사하게 바라봐주는 범위에 한해서다. 온전히 ‘나’이려고 하면 스타의 자격은 몰수당한다. 스타로서의 수명은 그것으로 끝난다. 

‘너’의 욕망에 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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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천통 넘게 오던 팬레터가 거짓말처럼 한 통도 오지 않는 충격적인 경험을 한다. 그야말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럴 때 스타는 인기나 사람을 믿으면 안되는구나를 생생하게 실감한다. 그걸 뼛속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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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스타들의 인식은 스타가 되기 전과 달라진다. 좋은 쪽으로가 아니다. 그들에게 사람은 공포에 가까운 존재가 되고 그 공포는 내면화된다. 그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더욱 ‘너’에 충실해지려한다. ‘너’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의 욕구이고 ‘내 삶’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믿어지지 않으면 그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 공포를 극복하기 어렵다. 줄타기 같은 삶을 시작한다. 나와 너가 순간순간 겨루다가 서서히 나를 지워나가기로 한다. 그렇게 자기 소멸의 길로 접어들며 병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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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워가며 살던 삶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기진맥진해져서 생 전체에서 마침내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 내 삶이 나와 멀어질 수록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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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스타는 화려하게 시든 꽃 같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

 

최근에 책을 읽다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다. 6개월쯤 전 결혼을 발표했던 인기 아이돌그룹의 멤버가 떠올랐다. 손편지를 작성해 올린 게시글 아래 수많은 악플이 달렸다. 팬들만 접속할 수 있는 커뮤니티임에도 악플이 수두룩했다.

팬덤은 아이돌의 결혼은 가수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그러니 본인들 마음에도 변화 없이 여전히 응원하는 팬들과 아이돌은 이른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악플을 정당화하는 팬(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람)들로 갈라섰다.

여태 우리가 봐왔던 연예인, 그중 아이돌들의 결혼은 서른 후반에서 마흔쯤에 볼 수 있었다. 내가 언급한 아이돌은 서른을 앞둔 나이다. 흔히 우리 주변 사람들이 결혼하는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이 가수를 아이돌(한 사람이 아닌) 로 본다면 이상한 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가수를 한 명의 사람으로 본다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가수의 결혼으로 인해 그 그룹은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보지 않았다. 유튜브를 봐도 여전히 (팬이 아닌)일반 사람들은 결혼을 축하하기도 했고 하루 가십거리처럼 며칠 후 잊고 그의 노래를 찾았다.

문제는 오히려 팬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온통 게시글에 악플을 쓰고 공감수로 힘을 얻으며 더 심한 말을 시작했다. 유튜브나 일반 커뮤니티를 하다보면 불쑥불쑥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유튜브에 그 그룹의 영상을 보면 탈퇴를 요구하는 댓글이 수두룩하고 심지어 멤버들간의 불화를 만들기도 한다. 결혼으로 인해 다른 멤버들이 상처받았다고 주장하며 탈퇴를 원하는 해시태그를 멤버가 사용하는 SNS에 올리기도 한다. 오히려 그런 해시태그가 그 그룹을 상처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당 그룹은 팬(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악플을 남기기 전까지 팀워크가 좋은 그룹으로 유명했다. 여러번 방송을 통해 가족같은 사이라고 언급도 할 정도였고 이들의 리얼리티 방송을 본다면 정말 친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 해당 가수는 방송관계자들의 평판이나 (팬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평판이 좋다 못해 높았다. 연습생때부터 함께한 멤버들까지 해당 가수를 가장 착하고 좋은 친구라고 언급까지 했었다.

하루아침에 팬이었던 사람들의 악플로 인해 해당 가수는 팀을 배신한 나쁜 놈이 되어 있었다.

이에 해당 소속사는 멤버들의 의견에 따라 탈퇴나 멤버변동 없이 함께할 것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팬들의 항의는 끊이지 않았다. 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당 가수의 유튜브 게시글에 찾아가 싫어요를 누르고 해당 영상을 신고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해당 가수의 가족들의 개인정보까지 알아내 택배테러를 하기도 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이돌의 결혼, 탈퇴는 팬들의 권한이 전혀 아니다. 아이돌의 결혼은 본인의 자유에게 맡겨진 권한이고 탈퇴 또한 팀의 멤버 모두에게 쥐어진 권한이다. 지금 이들에게서 사람들은 자유를 뺏어오려 한다. 또 모든 멤버가 함께한 단체 사진에서 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하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지워버림으로 그들의 추억을 훼손 시킨다.

정말 손가락질 받아야할 사람은 누구일까.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 가수일까 결혼을 배신이라 여기며 악플을 정당화하는 팬이었던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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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의 결혼으로 인해 갈라선 팬들의 글을 보다가 양측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애초에 아이돌을 한명의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과 사람으로 조차 보지 않고 대중에게 보여지는 인형으로 보는 이들이 대화가 통할리가 없다.

아이돌을 인형으로만 보는 이들은 본인이 인형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이돌도 사람이야.' 라고 입으로는 내뱉고 있지만 그들이 내보이는 아이돌 결혼으로 인한 탈퇴 주장의 논리는 아이돌을 인형으로, 대중의 입맛에 맞춰 살아야하는 꼭두각시로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다.

평생이가도 그들은 모든 연예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형쯤으로 여길 것이다.

반대로 본인이 손가락으로 써내려간 목을 죄이는 댓글들을 그대로 받는다면 소리칠 것이다.

'나한테 왜그래. 왜 나한테 그래.' 하고. 하지만 깨닫지는 못할 것이다. 애초에 머리속에서 본인은 사람이고 아이돌은 인형일 뿐이니까.

몇번을 똑같이 아이돌에게 했던 그 악플들을 돌려받아도 자신의 죄를 모를 것이다.

아이돌은 인형일 뿐이니까.

그렇게 죄책감 따위 느끼지 못하고 오늘도 손가락으로 살인을 할 것이다.

그로인해 피해자가 나왔을때, 자신의 악플을 정당화하고 남에게 책임을 미룰 게 눈에 훤하다.

우리는 악플로 사랑받아 마땅한 이들을 여럿 잃어보았음에도 발전해 나가지 못한다.

악플을 쓰면서도 악플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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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의 선이 있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오로지 본인만 들어갈 수 있는 선.

오로지 나만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의 테두리. 개인마다 다른 선.

그 선만 지켜준다면 오래 인간과계는 지속될 수 있다.

팬과 가수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팬이라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수의 모든 것을 알려하지 말고, 선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멋대로 그 선을 예고도 없이 침범한다면 누가 되었든 밀어내고 기분 나빠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선에 누군가 침범한다면 침범 당한 사람은 얼마든 밀어낼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이돌들에겐 인간이 당연히 누여야할 권리가 주워지지 않는다.

사실, 해당 가수가 속한 그룹의 팬들을 보고 아이돌 팬덤 문화가 꽤 발전했다고 생각했었다.

언제든 가수를 위해서 가수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걸 보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번 계기로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쯤 아이돌들이 정당하게 인권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을지. 하루라도 빨리 아이돌들이 인형이 아닌 사람으로 대우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돌들이 더이상 시든 꽃이 아니길 바란다. 찬란한 청춘이길 바란다.

상대가 그어놓은 선을 이해해줄, 존중해줄 마음이 없다면 섣불리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라도 손에 쥐어진, 누군가의 심장을 난도질 할 보이지 않는 칼과 총을 내려두길.